창작/단편소설
부산
사랑니
입병이 난곳에 공교롭게도 사랑니까지 나 있었다.
금방 낫겠거니 하며 약국조차 가지 않았던 3일.
못견디겠어 찾아간 약국에서 사온 알보칠을 바르고 이틀.
알보칠 문제가 아니란걸 깨닫고 찾아간 치과. 그렇게 총 6일.
그저 사랑니를 빼러 갔던 치과에서 모니터에 표시된 내 이름석자와 옆에 함께 써진 24라는 글자를 발견했을때, 그 '이재훈/24' 는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내가 스물 넷이라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렇기에 다른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행위를 멈추는건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생각한다. 스물 네살의 내 주변사람들과 나를 언제나 비교하게 되고,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매체에 등장하는 다른 스물다섯 스물여섯 인플루언서들을 보며
'아 아직 일년 혹은 이년 안에 저 정도까진 갈 수 있겠지' 라며 너무나도 비겁하며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내게 위안을 주는건 모순적이게도 매체에 등장하는 40대 이상의 사람들이다.
아직 아득하게도 남았구나 생각을 들게하기도, 그래도 내가 저 오래 살았던 사람보다 더 잘하는게 하나정도는 있구나, 하며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바보같고 오만한 생각인지는 글을 쓰면서 알 수 있는것 같다.
이 사람들은 나보다 두배이상을 생존해왔고 그 와중에서도 매체에 등장할 여유가 있다.
이미 나보다 성공해 있다는 것이다. 오래 살아남았단 것은 즉 더 노력했다는 것일지도.
스물 넷. 조바심이 난다. 그 치과가 뭐라고.
어쩌면 사랑니가 있던곳에 입병이 난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 차리라고, 너 스물 넷이라고 내가 나한테 보내는 경고였을지도.
1137
1.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적이 없다.
난 항상 죽음을 경계한다. 저 차의 운전수가 약간의 각도만 바꾸면 나는 즉사한다는걸 항상 생각한다. 비행기가 이륙할때,착륙할때에는 내가 지금 죽는다. 난 잘 살아왔나,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왔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 타는걸 피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나뉘어져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소위 어릴적이라고 부르는 기억이 없다. 유치원에서 어떤 여자아이에게 몹쓸짓을 한게 내 기억의 시작이고 그 후 9살때 대구에서 다닌 벧엘교회가 생각나고 그후로 초등학교6학년이 되기까지의 기억은 없다,라고 하고 싶지만 없다기보단 아마도 '지운것'일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뇌가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한건지 나에겐 기억을 취사 삭제할수있는 능력이 어느샌가 생겨있었다. 이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서야 깨달았다.
이 슬픈 능력은 나만이 상대를 잊는다는게 얼마나 무례한 능력인지를, 그리고 또 얼마나 편리한 삶을 여태껏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못난 나를 포기하지 않은 고등학교때의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편리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죽는건 결국 두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걱정함과 동시에 점심식사를 걱정한다, 여기에 '기억의 취사삭제'가 합쳐져 현재 모순덩어리의 나를 만들어냈다.
죽음을 가정하고 꾸는 꿈만큼 멀면서 가까운것은 없다.
사촌형의 죽음은 당시의 나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또하나의 나를 만들어 그에게 그 무거움을 전가했다.
하지만 쉽게내린 선택들은 어려운 결과를 낳는다.
감정을 두개 갖는것은 피곤하다. 생각은 두명을 거쳐야 비로소 입밖으로 나올수있었다. 그로인해 나는 진짜’말’을 하는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사회가 요구하는 관성에 의한 가십은 오히려 더 악질적이고 날카롭게 늘어갔지만, 진짜 이야기를 하는법은 비맞은 자전거가 녹이슬듯 점점 더 부식되어가 잊혀졌다. 이 글들은 비맞은 내 자전거를 굴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2.
이 이야기를 해야한다. 원래라면 하지 않을수 없다, 라고 썼겠지만 다섯문단 연속 이중부정은 좀 아니지 않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의 개념이 없어진 '19+적당한 나이’의 나는 그 의미없는 어느 시간중에 한 여자를 봤다.
자기객관화가 상당히 진행되있던 그때의 나는 '아 이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도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나는 실패했다. 처절하게.
내 안에 있던 그 사랑의 감정을 가진 '문어'는 재생조차 할 수 없게 철저하게 처참하게 잘렸다.
그녀는 우울증을 갖고있었다.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있을줄 알았다.
'인간'은 그걸 감당할 수 없다.
3.
그리곤 또 기억을 삭제했다. 일본에서 살게될 때 까지 또 무의미한 시간이 지났다.
정착이 간절했던 내가 이고초려해 들어간 회사에게는 아직도 감사함을 느낀다.
사장은 정말 좋은 사람일거다. 그렇게 믿고있다. 아직은.
타지에서 살면 Ego가 부딪히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재밌으니깐 꼭 해보시길 바란다. 내가 누군지, 뭘 원했는지는 타인과의 대화로는 알수없다. 항상 곁에 있었던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4.
다른 얘기다.
곰팡이를 매일 닦다보면 검은색에서든, 핑크색에서든 회색 냄새가 난다는걸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미디어에선 회색냄새가 나는것 같다.
5.
헤멘웨이가 말했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이 문서는 영원히 수정될 것이다.
헤멘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 라서 좋아한다기 보다는 ‘20+적은 수의 나이’로 집앞 버거가게에서 먹어봤던 7천원짜리 무알콜 모히토가 너무 맛있어서 난 모히토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중엔 멋부리기용 이야기로 헤멘웨이를 데려왔지만 말이다. 일본으로 이사올때 가구보다도 먼저 산 ‘주접용 바카디 모히토'는 아직도 내 냉장고 옆에서 주인이 주접떨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또 마실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주접 떨 수 있는 날이 올때 비로소 나는 유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것 같다.
6.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는 -아 물론 지금 살아계신다- 현재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아직도 나는 무엇이 '좋은 아버지'인지 모른다. 하지만 21+많은 수가 된 지금 확실히 알게된 건 지금의 아버지는 '이종희'라는 사람이란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다. 이 문단은 언제쯤 작성이 끝날지 모른다.
7.
어머니는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까지 만들어 놓으셨다.
어머니는 미래를 사셨고, 과거를 사는 아버지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사등분된 두부처럼 더 이상 하나로 뭉칠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형과 나는 미래에 먹혔고 어머니는 잘게 부서져 국물이 되었고 아버지는 된장찌개가 되셨다.
めでたし、めでたし。
8.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내 안의 1137은 운행을 종료한지 오래됐다.
영원한 것은 없다. 나만이 영원하다.
글로써 남기면 영원해진다. 이 얼마나 쉽게 영원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인가.
감사합니다 세종대왕님. 제 자신을 숨기고 악랄한 가십만 해대는 제 언어를 땅에서라도 용서해 주세요.
'그 날'이 있긴 한걸까요? SNS가 등장했을 때 '그 날'이 온 걸까요?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그 날'이 온 걸까요?
법이 만들어졌을 때 '그 날'이 온 걸까요?
과거 어떤 날, 어떤 곳에서 두 선조가 서로 지쳐 싸움을 멈추고 악수를 한 그 날이 '그 날'일까요?
'그 날'이 올 수 있을까요? DNA를 이길 수 있을까요? 고통을 멈출 수 있을까요?
다른 행성을 지배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도 '그 날'이 있을까요?
은하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DNA를 이길 수 있을까요? 가장 깨끗한 사람에게 추악한 비밀은 없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질문 앞에 끝까지 싸워 살아나가 보겠습니다.
제가 답을 찾겠습니다. 끝없는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인류를 영원히. 아무리 추악해도, 우리 어머니가 인류셨고, 그녀가 인류고, 제가 인류입니다.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인류여 영원히.
맺으며.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엿이나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게 내 이야기였다.
앞으로의 영원에 이 글이 늘어날수 있도록.
영원히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