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았네

조졌어

 

땀냄새나고 젖은머리의 난

너를 부를 수 가 없어

 

안경잽이에게 안겨있는 너를

나는 부를 수 가 없어

 

어릴때 모래 사장

놀고나면 검은비누

 

일끝나고 헤엄쳐

내가만진 검은비누

 

얇은 팔 얇은 다리 나는

너를 부를 수 가 없어

 

안경잽이인 나는 너를

정말 부를 수 가 없어

 

어릴때 모래사장

어릴땐 모래 사장

 

어릴때 모래사장

어릴땐 모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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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장위동

맘에들던 가게는 전부 망했네

존중받지 못하는 추억들

여긴 장위동 이었어

 

나는 아직도 다리를 저는데

너는 날 모른다 하네

나는 아직도 눈물이 나는데

니 연락처는 온데간데 없네

 

나는 아직 장위동

너는 이미 가버렸네

 

여긴 장위동

맘에들던 가게는 전부 망했네

존중받지 못하는 추억들

여긴 장위동 이었어

 

니가 흘러

흘러서 말라

피부가 당겨

머리도 아파

 

니가 흘러

흘러서 굳어

피부가 당겨

이젠 잠들어

 

여긴 장위동

맘에들던 가게는 전부 망했네

내가 살았던 곳

내가 알던 너는 이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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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도 굉장히 어리지만,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에 인터넷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

기쁨을 나누면 두 배, 슬픔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명언의 비틀기로써, 이상하게 이 비틀림이 재밌어서, 잘 기억해놓고 누군가 원래의 명언을 사용했을 때 그 명언을 카운터치듯 가볍게 던지는 농담 구절로 써왔습니다.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보류 중이었으나, 최근 한두 달 새에는 이 '비틀기 명언'만큼 자주 되씹은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온통 머리가 이 생각뿐입니다.

바로 오늘 당장, 아니면 내일, 아니면 그다음 날부터라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시도 때도 없이 속여야 하고, 실수를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 빈틈을 쑤셔 헤집어야 하는 그런 사회를 이제부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 '비틀기 명언'은 마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그저 그런 농담 구절이 아니라 무겁고 불편한 어떤 말로 다가오는 느낌이 듭니다.

마냥 베풀 수도 없고, 뒷일을 생각해야 하고, 그렇다고 하기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재밌고, 어떤 득이 되는 정보든 알려주고 싶고, 그런 모순적인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보통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의 어느 단계에서건 거름망에 걸러져 자연도태되거나 혹은 반강제적 격리가 이루어지겠지만, 이상하게도 적응력이 좋은 건지 무의식적 생존 본능의 발현인지 여러 사회관계의 한가운데에 어느새 덩그러니 놓여 있는 제 자신을 보면 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니면 어디서부터 잘한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내가 여기 가운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요.

인간이 계속 관심을 갈구하도록 진화해왔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근데 이제는 그 관심이 더 이상 대상에게 안전과 식량을 보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둘 중 하나를 제공하되 나머지 한 가지를 빼앗아 버리는 결과를 낼 수도 있겠죠. 모난 돌이 정 맞으며 떡 하나 더 먹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호구가 되는 세상이 온 건 아닐까요?

오늘 주제의 결론을 내려봅니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라는 구절.
이 구절뿐만 아니라 도처의 수많은 명언들 조언들 다 부질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명언들도 다른 좋은 명언들로 카운터칠 수 있으니까요.
사회엔 애초부터 정답이란 게 없고, 그저 정답찾기를 그만두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과, 정답만 찾아 다니며 사는 불행한 사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열심히 삽시다.

이번 주제는 경험으로 배울 수밖에 없는 것 같네요.

https://youtu.be/DUg97uuiG6Y
<장면 삽입 + 고조>
"모르면 맞아야죠!!!"

<페이드 아웃>
노피였습니다.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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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적이 없다.

항상 죽음을 경계한다. 차의 운전수가 약간의 각도만 바꾸면 나는 즉사한다는걸 항상 생각한다. 비행기가 이륙할때,착륙할때에는 내가 지금 죽는다. 살아왔나,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왔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비행기 타는걸 피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나뉘어져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소위 어릴적이라고 부르는 기억이 없다. 유치원에서 어떤 여자아이에게 몹쓸짓을 한게 기억의 시작이고 9살때 대구에서 다닌 벧엘교회가 생각나고 그후로 초등학교6학년이 되기까지의 기억은 없다,라고 하고 싶지만 없다기보단 아마도 '지운것'일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뇌가 본능적으로 방어기제를 발동한건지 나에 기억을 취사 삭제할수있는 능력이 어느샌가 생겨있었다. 이건 등학교 3학년이 되서야 깨달았다.

 이 슬픈 능력은 나만이 상대를 잊는다는게 얼마나 무례한 능력인지를, 그리고 얼마나 편리한 삶을 여태껏 살아왔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못난 포기하지 않은등학교때의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편리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죽는건 결국 두사람에게 동시에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걱정함과 동시에 점심식사를 걱정한다, 여기에 '기억의 취사삭제' 합쳐져 현재 모순덩어리의 나를 만들어냈다.

 

죽음을 가정하고 꾸는 꿈만큼 멀면서 가까운것은 없다.

 

 

 사촌형의 죽음은 당시의 나로써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던것 같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또하나의 나를 만들어 그에게 무거움을 전가했다.

하지만 쉽게내린 선택들은 어려운 결과를 낳는다.

 감정을 두개 갖는것은 피곤하다. 생각은 두명을 거쳐야 비로소 입밖으로 나올수있었다. 그로인해 나는 진짜 하는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사회가 요구하 관성에 의한 가십은 오히려 악질적이고 날카롭게 늘어갔지만, 진짜 이야기를 하는법은 비맞은 자전거가 녹이슬듯 점점 부식되어가 잊혀졌다. 글들은맞은 전거를 굴리는정이라고 생각한다.

 

2.

이야기를 해야한다. 원래라면 하지 않을수 없다, 라고 썼겠지만섯문단 연속 이중부정은 아니지 않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간' 개념이 없어진 '19+적당한 나이’의 나는 의미없는 어느 시간중에 여자를 봤다.

자기객관화가 상당히 진행되있던 그때의  나는 ' 이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도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모든 첫사랑이 그렇듯, 나는 실패했다. 처절하게.

안에 있던 그 사랑의 감정을 가진 '문어' 재생조차 없게 철저하게 처참하게 잘렸다.

그녀는 우울증을 갖고있었다

나는 그걸 감당할 있을줄 알았다.

 

'인간' 그걸 감당할 없다.

 

3.

 그리곤 억을 삭제했다. 일본에서 살게될 때 까지 무의미간이났다.

정착이 간절했던 내가 이고초려해 들어간 회사에게는 아직도 감사함을낀다.

장은 정말 좋은람일거다. 그렇게 믿고있다. 아직은.

 

 타지에서 살 Ego딪히는정을 느낄 있다. 재밌으니깐 해보시란다. 내가 누군지, 했는지는인과의 대화로 알수없다. 항상 곁에 있었던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때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4.

 다른 얘기다. 

곰팡이를 매일 닦다보면 검은색에서든, 핑크색에서든 회색 냄새가 난다는걸 있다생각해보면 미디어에 회색냄새가는것 같다.

 

 

5.

 멘웨이가했다. 모든 초고는 걸레다. 문서는 영원히정될 것이다.

 

멘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 라서 좋아한다기 보다 ‘20+적은 나이’로 집앞 버거가게에서 먹어봤던 7천원짜리알콜 모히토가 너무 맛있어서  모히토 좋아하게었다. 나중엔 멋부리기용 이야기로 헤멘웨이를 데려왔지만 말이다. 일본으로 이사올때 가구보다도 먼저 ‘주접용 바카디 모히토' 아직도 냉장고 옆에서 주인이 주접떨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마 마실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주 있는 날이 올때 비로소 나 유쾌람이 있을것 같다.

 

6.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는 - 물론 살아계신다- 현재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아직도 나는 무엇이 '좋은 아버지'인지 모른다. 하지 21+많은 수가 확실히 알게 지금의 아버지는 '이종희'라는 사람이란것이다.

어려운 이야기다. 문단은 언제성이 끝날지른다.

 

 

7.

 어머니는 과거의 , 현재의 , 미래의 ''까지 만들어 놓으셨다.

어머니는 미래를셨고, 과거를 사는 아버지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족은 사등분된 두부처럼 이상 하나로 뭉칠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형과 미래에 먹혔고 어머니는 잘게 부서져 국물이 되었고 아버지는 된장찌개가 되셨다.

めでたし、めでたし。

 

8.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내 안의 1137은 운행을 종료한지 오래됐다.

영원한 것은 없다. 나만이 영원하다.

글로써 남기면 영원해진다. 이 얼마나 쉽게 영원을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인가.

감사합니다 세종대왕님. 제 자신을 숨기고 악랄한 가십만 해대는 제 언어를 땅에서라도 용서해 주세요.

 

'그 날'이 있긴 한걸까요? SNS가 등장했을 때 '그 날'이 온 걸까요?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그 날'이 온 걸까요?

법이 만들어졌을 때 '그 날'이 온 걸까요?

과거 어떤 날, 어떤 곳에서 두 선조가 서로 지쳐 싸움을 멈추고 악수를 한 그 날이 '그 날'일까요?

'그 날'이 올 수 있을까요? DNA를 이길 수 있을까요? 고통을 멈출 수 있을까요?

다른 행성을 지배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도 '그 날'이 있을까요?

은하계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요?

DNA를 이길 수 있을까요? 가장 깨끗한 사람에게 추악한 비밀은 없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거대한 질문 앞에 끝까지 싸워 살아나가 보겠습니다.

제가 답을 찾겠습니다. 끝없는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인류를 영원히. 아무리 추악해도, 우리 어머니가 인류셨고, 그녀가 인류고, 제가 인류입니다.

제가 짊어지겠습니다. 인류여 영원히.

 

 

맺으며.

대단하다면 대단하고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라고 한다면 엿이나 먹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게 이야기였다.

 

앞으로의 영원에 이 글이 늘어날수 있도록.

영원히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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